슬픔 없는 나라로 너희는 가서, 2146,529

imakemylifebeutiful 2022. 3. 19.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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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없는 나라로 너희는 가서>
1. 출렁거리지 않는 삶은 없다. 돌아보면 누구나 살아온 시간이 기적 같다. 눌변인 듯 담박한 몇 줄이 더 미덥다. 

(중략) 무엇보다 눌변의 마지막 구절을 애써 읽어드리고 싶어 이 시를 골랐다. '살아온 기적이 살아갈 기적이 된다고, 사노라면 많은 기쁨이 잇다고.'

 

2. 급할수록 더디다. 지쳐 숨이 넘어갈 때쯤, 마침내 올 것은 온다. 더디게 더디게, 그것이 봄이다.

(중략) 봄이 오면 겨울은 망하는가. 그렇지 않다. 봄은 그 겨울에 조차 봄인 봄이다. 겨울이 깊이 묻어둔 씨앗에조차 움을 틔우는 봄이어야 한다. 으스스한 봄은 비참하다.

 

 

<2146, 529>

1. '고인'을 처음에는 '고인들'이라고 썼다가 생각 끝에 '들'을 지웠다. 다수를 지칭하는 보조사 '들'이 행여 우리가 책을 통해 만난 분들의 고유한 삶을 흐리진 않을지, 그분들의 죽음을 단순이 통계를 내기 위한 자료의 수치로만 읽히게 되진 않을지, 조심하느라 그랬다.

 

2. 황정은의 장편소설 <계속해보겠습니다> 에는 '소라'와 '나나'가 아버지 '금주'를 어떻게 잃었는지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이 얘기는 소라의 목소리로 다음과 같이 표현된다. "그는 나나와 내가 각각 아홉 살과 열 살일 때 주었다. 공장에서 일하다가 거대한 톱니바퀴에 말려들었다. 상반신이 갈려 나왔으므로 공장에 남은 직원을 모아 점호를 해보고서야 사고를 당한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 수 있었다고 한다."

 금주의 죽음을 설명하는 문장들에는 너무 많은 말이 숨겨져 있다. 금주는 도대체 어떤 환경에서 일하고 있었나, 금주의 안전을 보장해주는 장치가 제대로 갖춰져 있기는 했나, 잘못 작동하기 시작한 톱니바퀴는 왜 바로 멈추지 않았나. 기계가 돌아가는데, 금주 곁에는 정말 아무도 없었나. 어째서 점호를 할 떄까지 그 일이 금주에게 일어났다는 것을 그 누구도 모를 수 있나. 한 노동자의 죽음에 대해 자본을 가진 회사는 무슨 입장을 전했나. 

 

3. 다 다른 사람이 맞는가 싶을 정도로 책을 이루는 문장에서 자주 발견되는 표현이 있다. "끼여" "깔려" "떨어져" "추락해" "맞아" "부딪쳐" 죽었다는 말. 이런 말은 기업이 화려하게 빛을 내뿜기 위해 쌓아 올리는 고층건물이나 한국사회가 신화처럼 여기는 생활의 근거지인 신축 아파트가 지어지는 현장에서, 또는 최대 이윤을 내기 위해 종일 돌아가는 작업장에서도 쓰이고, 사람들을 지키기 위한 용도로 마련되는 '옹벽'이나 '지붕', '방음벽'이 무너지는 자리에서도 쓰인다.

 

두 책 모두 시와 기사를 모아 그 의견을 담은 책이라 어려운 책은 아니었으나 무거운 책이라 할 수 있겠다.

가볍게 읽기엔 담긴 사람들의 희생이나 애환이 거대하다.

출렁거리지 않는 삶은 없다. 돌아보면 살아온 순간오들이 다 기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