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혐오예요

imakemylifebeutiful 2020. 10. 16.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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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신이 성차별주의자라는 자각이 없는 남성들, 자신의 고정관녀메 단 한번도 의문을 던지지 않는 사람들이 습관적으로 저지르는 서희롱과 성적 모욕. 여성들은 일상적으로 이런 일을 겪고 참고 견딘다. 그런 경우가 너무 잦고 많아 일일이 대응하는 것조차 꺼린다. 매번 분노해서 에너지를 다 소모할 순 없지 않은가. 대다수 여성은 꾹 참는다. 모욕감을 느껴도 내색하지 않는다. 못들은 척하고 안 들은 척한다. 속으로만 울분을 삭힌다. 남성들 태도나 말에 동의해서 가만히 있는 게 아니란 뜻이다.

 

2. '성매매 여성이랑 뭐가 달라?'라고 했던 상대의 말은 둘을 똑같이 취급한다는 뜻은 아녔다고 봐요. 그건 '우리나 저기나 똑같이 섹스하고 있는데 뭘?'이라는 의미가 아닐까. 남자가 그 말을 하기에 적절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그 상황에서 그럼 나도 창녀란 말이야?라는 식으로 여자가 반응한다면 이게 여성에 대한 여성 혐오가 아니면 뭔가. 여자들이 창녀라는 이름에 발작을 일으키는 이유, 자신과 창녀를 반드시 구별해야 하는 이유, 성노동을 극도로 혐오하는 이유는 다른 게 아녜요. 창녀가 된다는 건 남자와 이 사회의 비난을 받는 여자, 혐오의 대상인 성에 난잡한 여자가 되는 거죠. 그러니까 여성 스스로 자기 검열을 한 거죠. 여성 내부에서도 여성 규범네 들어 맞지 않는 여성을 혐오하는 거지요.

 

3. 문제는 상상력이다. 상상력은 말 그대로 상상하는 능력이다. 지금 여기에 없는 것을 보거나 듣는 능력. 내가 아닌 상대방의 처지에서 느낄 수 있는 능력. 아직 보지 못한 미래를 보는 것도 상상력이며 거기에 발을 내딛는 것도 상상력이다. 무엇보다 상상력은 타인에 대한 공감력과 세게에 대한 신뢰를 높여 준다.

 

4. "우리는 장애우를 혐오하지 않습니다. 다만 (...) 학교 내 설치를 제고해 달라는 것입니다!" 장애가 있는 친구들(장애우)은 혐오하지 않지만 그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위한 건물은 반대한다는 논리. 친구를 싫어하지 않는다면서 그 친구에게 필요한 건물 설립을 반대한다는 사람들.

 

5. 이런 해괴한 논리가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힘을 발휘한다는 사실이 나는 무섭다. 그들은 자신이 전체주의자라는 사실을 알고나 있을까. 처음에는 그런 혐오 발언이 너무 저열하고 한마디로 후지기(!)때문에 대꾸할 가치조차 없다고 생각했다. 상대하지 않으면 다들 제풀에 조용해질 거라고, 혐오 발언을 하는 사람들이 사회적 지탄을 받으리라 믿었다. 순진하고 안일한 생각이었다.

 

6. "종북 동성애 김정은 반대 예수 천국 애국 할렐루야."도대체 무슨 맥락인지 알 수 없는 말들이 이어진다.

(중략)

퀴어 축제에 난입해 길바닥에 드러눕는 등 막무가내로 난동을 부리며 소수자를 향해 직접적인 혐오 공격을 서슴지 않는다. 그런 그들을 평정심을 유지한 채 지켜보기란 무척 힘들다. 영화를 본 관객 대부분은 영화가 끝나고도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다. 훌쩍이는 사람, 크게 한숨을 내쉬는 사람 등 다들 충격에 휩싸인 표정이다. 이것이 환한 대낮 대한민국 한복판에서 일어나는 실제 상황이라고는 믿고 싶지 않는 모습들이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우리는 야만적이고 폭력적인 한국 사회의 민낯을 고통스럽게 직시해야만 한다.

 

7. 태어나면섯부터라고 대답한 사람도 동성애자 역시 태어나면서부터라고 대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본 적이 없으리라. 이성애자는 언제부터 이성애자인 걸 알았느냐, 언제부터 이성애자였느냐는 질문을 받지 않는다.

 

8. 성소수자를 향해 '종북 게이'라는 신조어마저 등장했다. 한국에서 대표적인 증오의 낙인이 바로 이 '빨갱이'인데, 여기에 성소수자인 게일르 갖다 붙인 것이다. 결국 동성애자는 북한을 추종하는 빨갱이들이란 소리다. 동성애자라는 이유만으로 성소수자는 순식간에 북한을 추종하는 불온한 존재, 나라를 혼란과 공포에 빠뜨려서 북한을 이롭게 하는, 즉 국가 전복 세력이 된다. 한 발짝만 물러나 생각해 봐도 이들의 말은 전혀 앞뒤가 맞지 않다. 말 그대로 비상식적이고 부적절하다. 할 말을 잃게 만드는 극단적인 혐오 발언이다. 그 밑에 흐르는 혐오와 적대감이 너무 커서 섬뜩할 정도다.

 

9. 최근에는 종북 좌파의 최종 병기가 동성애자래요. (웃음) 사실 상식 있는 사람은 종북 게이란 말을 들으면 다 웃어요. 하지만 이런 말이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는 부분이 분명 있어요.

 

10. 마르틴 니묄러의 시<그들이 처음 왔을 때>

나치가 공산주의자들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다. 

그 다음 그들이 사회민주당원들을 가두었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사회민주당원이 아니었다.

그 다음 그들이 노동조합원들을 덮쳤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다.

그 다음 그들이 유대인들에게 왔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다.

그 다음 그들이 나에게 닥쳤을 때에는,

나를 위해 말해 줄 이들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11. 예를 들어 동물이 누군가에 의해 극악한 학대를 받아도 학대자로부터 동물을 구출하기 힘들어요. 동물의 생명권보다 학대자의 소유권이 더 우선시되기 때문이에요. 또, 한국에서는 남의 동물을 다치게 하면 '재물손괴'로 처벌해요. 동물을 단순한 '물건'이나 소유자의 '재산' 정도로 취급하는 것이 한국 법인 것이죠.

 

12. 돼지에 관한 영화를 만들겠다고 결심한 후, 제일 놀라웠던 발견은, 살아있는 돼지를 제 평생 한번도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었어요. 참 이상한 일이죠. 돼지고기는 어디에나 있는데 살아 있는 돼지를 한번도 본 적이 없다는 것이. 예전에는 시골에서 집집마다 돼지를 몇 마리씩 키웠다는데, 언제부터인가 시골에 가도 돼지를 보기 힘들어요. 돼지들이 다 어디로 간 걸까요? 돼지가 눈에 띄지 않는 이유는 그들이 햇빛도 바람도 들지 않는 밀폐된 실내에 갇혀 밀집 사육되고 있기 때문이에요.

 

13 .그 트라우마. 기억이 한참 가요. 지금 몇 년 됐는데도 그 기억이 생생하거든요. 옛날에 유대인들이 독일군에게 학살당할 때 애도 있고 어른도 있고 많았잖아요. 그런 생각이 나는 거예요.(...)

나한테 거부할 권리가 없는 건가 이런 것도 생각하게 되고요. 명령에 따라 사람을 죽이라고 하면 내가 죽일 건가 이런 것도 생각나구요.

 

책을 읽는 동안에 참 불편한 책, 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러면서 책을 추천하거나 할 때, "조금 불편할 수도 있어~"하고 소개해야겠다,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불편하다라는 표현에 대해 의아함이 들었다. 이 내용들에 공감하고, 고쳐져야 하고, 무지한 발언을 하는 사람들에게 아주 화도 느끼는데, 왜 나는 타인에게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주제는 '민감하고, 불쾌감을 느낄 수 있어'라고 조심스러워해야 할까.

 

이 책이 다루고 있는 부분에 모두 공감하는 것은 아니다. 다소 극단적이라고 느끼는 부분도 있었고, 동의하기 어려운 비유를 사용하며, 비합리적이라 느껴지는 근거를 제시하는 부분도 있었다. 다만, 책에 등장하는 분야별로 실존하는 차별과, 그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어떤 부분이 수정되어야 하는지, 심지어 수정한 방향성에서 새로운 구별이 발생하지는 않는지에 대해는 분명하게 알아갈 수 있었다. 

 

항상 쉽지 않은 문제를 다뤘다. 그냥 차별주의자로 살 수 밖에 없는것일지.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붐을 일으켰을 때도, 6~8개의 화장실이 있거나(여성, 남성, 장애인 여성, 장애인 남성, 트렌스 젠더 여성, 트렌스 젠더 남성 등), 모두가 단일 화장실을 사용하는 것에 대한 비유가 등장했지만, 선뜻 무엇이 맞다고, 그 방향에는 차별이 없고 모두가 안전하다고 선택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인터뷰서적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기에 그 점은 책에 아쉬운 점이라고 느껴진다. 인터뷰 서적은 가독성은 좋으나 어딘가 단편적이라, 그 배후에 어떤 의미를 담고자 했는지, 배경으로 어떤 가치관을 여러 관점에서 담아주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 소설이나 에세이처럼 찰진 비유에 감탄할 일도 드물다) 그래도, 책이 가진 무게를 다소 가볍고 쉽게 풀어내기에는 좋은 선택이었던 듯도 하다.

 

 

그건 혐오예요
국내도서
저자 : 홍재희
출판 : 행성B(행성비) 2017.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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