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 문장의 무분별한 선동을 주워 담는 데는 수백 개의 정리된 문장이 필요했다
2. 안희정이 그 밤에 급히 불러 처리해야만 했던 아주 중요한 일은 내게서 '미투하지 않겠다'는 대답을 듣는 일이었고, 그 입막음의 방법으로 성폭행은 다시 일어났다. 내게 범죄한 그다음 주 안희정은 미투를 지지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3. 그 밤 오피스텔에 온 나를 보며 안희정이 말했다. "요즘 내가 미투를 보며 네게 상처가 되는 것을 알았다. 그때 괜찮았느냐." 그리고 내 반응을 살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대답을 못 하고 있었다. "미안했다. 그때 너 괜찮았느냐." 내게 다시 물었다. "지금은 괜찮으냐?"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고개만 푹 숙이고 있었다. 그러고는 "너는 미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며 미투에 대한 내 의견을 물었다. 이어 "내가 쉴 수도 있는데 너도 따라서 쉬어라"라며 내 미래를 운운했다. 안희정은 내가 자신과 '공동운명체라는 것을 대답 전에 다시금 인식시켰다.
4. 삼인성호라 했던가. 그런식으로 몇몇이 모여 거짓을 말하니 순식간에 나는 세간에서 '그런 여자'가 되었다. 사심으로 일을 한, 지사의 사생팬인, 신뢰할 수 없는 이상한 여자. 그리고 나를 향한 그런 프레임화는 이후 이어진 지난한 재판 과정 내내 그들의 집요한, 거의 유일한 전략이었다.
5. '그래. 방송에 들어가자.' 마이크를 차면서 앞ㅇ로 닥칠 상황들을 떠올렸지만, 가늠되지 않았다. 쓰러질 것 같았다. 휘몰아치는 폭풍 속에서 나는 어느새 방송국 카메라 앞에 앉아 있었다. 질문은 방송 직전에야 보았다. 스태프가 조심스럽게 마이크를 채워주고 의자를 최대한 위로 올려주었다. 그뿐이었다. 내게 준비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어디를 보고 말해야 하는지, 무슨 이야기부터 하면 되는지, 목소리 크기는 어느 정도가 적당한지, 인터뷰 시간은 몇분인지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경험한 일을 있는 그대로만 말하면 된다고 했다. 하지만 피해 사실을 이야기하는 것은 변호사와 단둘이 앉아 있을 때조차 쉽지 않았다. 하물며 카메라 앞에서는 더 어려웠다. 앵커 앞에는 질문 스크립트가 있었지만 내 눈앞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시선을 둘 곳도 없었다. 앵커의 첫 질문을 받는데,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조명 빛이 점점 커지며 나를 집어삼킬 것만 같았다. 어지러웠다. 나를 여기에 앉게 한 모든 상황이 다 원망스러웠다.
6. 피해자를 향한 사과는 없었다
7. 안희정은 내가 신고를 준비하고 있음을 알아채고 여러 경로를 통해 전화와 메시지를 보내왔다. 계속 울려대는 전화가 무서워 전화기를 꺼놓았다. 방송에 나가기 전이었음에도 많음 사람에게 연락이 왔다. 그때 내가 갈 수 있는 곳은 언론사 말고는 없었다. 이미 나는 누군가에 의해 공개되어 있었다. 숨으려 한다해도 숨을 수 없었다.
8. 처음은 단기간 행정 인턴이었다. 숨만 쉬고 살 수 있을 정도의 월급을 받았다. 기본적인 생존 이상으로 움직이면 그 즉시 마이너스 생활이 찾아왔다. 그렇지만 그것도 내게는 큰 행운이었다.
9. 종종 위법과 편법을 목격했다. 선거라는 것이 원래 이런가 싶었다. 알아서는 아노디는 일투성이인 무서운 곳에 온 것 같았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때가 많았다. 법에 저촉되어 일의 진행이 어렵다고 얘길 하면 이런 얘기들이 돌아왔다. "뭔 소리냐! 선거 안 할 거야?""모르면 가만히 있어. 시키는 대로 해!"원래 선거는 그래. 지면 다 끝이야. 겨로가가 중요해."
10. 팔이나 어깨, 등을 쓰다듬는 등 추행을 하기도 했다. 내가 용기를 내어 사과하라고 하자 "내 막내 여동생 같아서 그랬다"는 변명을 했다. 그러고는 "네가 기분 나빴다면 미안하게 됐다. 내가 열 살이나 어린 너한테 그런 소릴 들어서 뒷골이 당겨 안 먹던 술을 다 마신다"며 소리를 지르고 화를 냈다. 이 이야기를 직장 선배에게 하자 선배는 "네가 에민한 것이니 참아라, 사과하지 않았느냐, 너 말고도 수행비서 할 사람 많다, 자꾸 문제제기하면 잘리는 건 너다"라고 했다.
11. 안희정은 침묵만으로도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이었고, 침묵만으로도 불편한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느 ㄴ지위를 갖고 있었다. 문자 연락에 답이 늦어면 바로 "..."라는 메세지를 보내왔다. "..." 이 메세지는 내 전임자들에게도 사용하던, 무언의 질책이 담긴 불편한 심기의 표현이었다.
12. 정무비서로 근무할 때, 충남도청에서 상급 공무원이 기가넺 근로자였던 계약직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희롱 사건이 일어났다. 피해자가 1차 신고를 한 다음 날 상급 공무원은 피해자의 연봉을 깎는 기안을 작성했고
13. 피해를 당할 때도 아니라고 거부하고 반항하긴 하였지만 그것은 소극적인 자세였다고 봐야 한다. 남자에게 거부는 거부가 아니다. 부정은 긍정이다. 저항은 더 적극적으로 '싫어요' '안 돼요' '악!' 소리치고 발로 차고 주먹으로 치고 할퀴고 외국이나 심야일지라도 밖으로 뛰쳐나와 러시아, 스위스 경찰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어야 하는 것이다
14. '넹'을 보면 연인 관계가 분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김지은은 절대 피해자가 아니다.
15. 걱정해주는 분들에게 괜찮다고 말했지만, 하나도 괜찮지가 않았다. 설명하고 싶은데 설명할 수가 없었다.
16. 일부 전문가들은 피해자 옆에 또래 친구들이 있다는 게 굉장히 특이한 현상이라고 했다. 일반적으로 보아 온 피해자는 항상 혼자였다고 했다,
12번 진짜 한 세번은 다시 읽었다 뭔소리야 이게..
13번, 14번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부정도 긍정이면 긍정은 강항 긍정인데 어떤 반응만이 진짜 거절을 표현할 수 있는 방안이지? 그냥 전혀 맥락도 없고 논리도 없는 개소리에 계속 어이만 없었다. 지나갈때마다 보이는 초록색 헌옷수거함에 양심없이 이상한 옷 넣었던 과거가 부끄러워지고, 그게 실질적으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 실감나게 해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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