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책도 많이 읽었는데, 대부분 타리에이 베소스, 카프카, 도스토옙스키가 쓴 매우 슬프고 두꺼운 책들로, 열네 살짜리 소녀에게는 사실 너무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었다
2. 다른 사람과 함께 있지 않을 때만 외롭다고 느낀 것이 아니라 안개가 나의 의사소통을 방해할 때에도 외로웠다. 외로움은 그렇게 내 일부가 됐다
3. 사실 이 시기에는 안개가 너무 짙게 깔려서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일이 점점 힘들어졌고, 더구나 이런 문제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아예 꿈도 꾸지 못했다. 이렇다 보니 가장 쉬운 해결 방법은 거짓말이었다
4. 내가 다른 사람과 함께 웃고 있을 때면 고독이 내 속으로 파고들어, 삶은 쉽고 즐겁고 좋은 것이 아니라 외롭고 슬프고 고통스러운 것이라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그러면 나는 더 외롭다고 느꼈다
5. 한번도 본 적 없지만 단숨에 그녀가 누군지 알아챘다. 그 여자는 고독이었고, 아름다웠다. 고독이 이처럼 아름다운데 다른 누가 더 필요할까?
6. 나는 혼란스럽고 두렵고 불행했지만, 여전히 나 그대로이며 완전히 정상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그냥 늑대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는 것이 결과적으로는 논리적이었다
7. 게다가 면담이 끝나면 나는 최소한 다음 면담 시간까지 이런 답답함에 갇혀 있어야 하는 반면, 치료사들은 가벼운 마음으로 집에 갔다. 나는 미로를 헤매는 나를 안내하고, 결국에는 내가 심각한 병을 앓고 있다고 설명해줄 치료사를 원하지 않았다. 나는 내가 무엇을 하는지 볼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돕고, 의미 있는 대안을 제시해줄 심리치료사를 원했다
8. 목욕 후에 조용히 저녁시간과 밤을 보내고, 병원 직원들에게 협조적으로 굴었다. 약을 먹을 필요도 없었다
9. 저녁마다 병동을 돌면서 옷을 걷어가던 간호사가 기억난다. 그 간호사가 옆방에서 남자 환자의 옷가지를 가지고 나와 내 방에 왔을 때였다. 갑자기 알람이 울리는 바람에 그 간호사는 들고 있던 옷가지를 내버리고 복도로 달려갔다. 그래서 옆병실 남자의 조깅화와 옷가지가 내 방에 남겨졌다. 그의 신발은 크로, 신발끈도 길었다. 나는 슬프고 실망스러웠다. 나는 그 간호사를 좋아했고,그 간호사도 나를 좋아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날 밤에 목숨을 끊고 싶지 않았는데... 그럼에도 나는 그녀가 내게 준 것을 순순히 따랐다. 나는 목을 매달 올가미를 만들기 위해 신발끈을 신발에서 풀었다. 나는 서두르지 않았다. 원래 그런 짓을 저지를 생각이 없었던 데다가, 간호사가 다른 결정을 내려주길 바랐기 때문이다. 천천히 움직였는데도 간호사가 다시 돌아왔을 때는 거의 준비가 끝났다. 간호사는 버럭 화를 냈다. 아마도 나를 보고 갑자기 겁이났다 보다. 하지만 당시에 나는 그녀를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그냥 혼란스럽고 화가 났고 실망했다. 정작 신발을 방에 두고 가서 내가 이런 짓을 하게 만든 사람은, 결국 그 간호사였다.
10. 그 이후 몇 년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다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기억은 거기에서 멈추었다. 그래서 나는 현재에서 거꾸로 기억을 더듬어가기 시작했다. 내가 지금 어디에 살고, 어디에서 일하는지를 알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 없이 과거로 돌아가 내가 언제 학업을 마쳤고, 언제 이집으로 이사를 왔고, 언제 블린데른의 대학에 다니기 시작했고, 언제대학입학 자격시험을 치르기 위해 야간 학교에 다녔는지를 생각해낼 수 있었다
11. 나는 수년간 매일 돈을 받는 조력자들에 둘러 싸여 살았다. 인생의 여섯 내지 일곱 해동안 직계가족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무료로 나와함께 있어주지 않았다
12. 마침내 종이는 전체가 온갖 색깔과 모양으로 가득했고, 까만 네모는 그림의 작은 일부가 됐다. 나는 종이를 간병인에게 다시 주었다. 그러자 그는 그림을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간병인은 "내가 네 그림을 망쳤구나, 아른힐"이라고 말했다. "종이 한가운데에 모든 것을 망가뜨릴 까만 네모를 커다랗게 그려놓다니. 그것도 먹으로 말이야. 네가 지우지도 못하게. 그 네모는 아직 그곳에 있어. 하지만 너는 이제 그네모가 포함된 무늬를 하나 그렸어. 이제 네모는 더이상 밉지 않고, 그 무엇도 망칠 수 없어. 이 네모는 알록달록한 전체의 자연스러운 일부가 됐어. 너도 네 인생을 이 그림처럼 만들 수 있어." 나는 그렇게 했다. 내 페이지는 비어 있지 않다. 네모는 여전히 그곳에 있지만 아무것도 망가뜨리지 않는다. 이것은 전체의 일부며, 내 인생의 일부다. 긴 시간이 걸렸지만 우리는 해냈다. 그리고 나는 모든 색깔을 전부 사용했다.
어렸을 때는 심리학 서적을 참 좋아했다. 나도 정의내리기 힘든 내 마음의 어지러움을 책이 멀끔하게 정돈해 준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날부터 이런 곳에서 하는 이야기가 어딘가 조금은 진부하고, 뻔한 이야기를 내비치는 거 같아 피했다. 어쩌면 그냥 몹시 우울하면서도 따뜻한 위로를 전하려는 모순이 불쾌했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이 책은 좀 다르다고 느껴진 것이다. 제목에서 가장 큰 울림을 받아 책을 읽기 시작했으나, 내용이 그저 심리학 분석 서적이 아니라 좋았다. 내가 가진 마음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정신적 의존을 찾아 해매나, 그들은 다 내게 돈을 받아야 함께 해 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부분. 조현병을 가진 사람들이 불가항적인 힘으로 자해를 지속하나, 동시에 자신의 힘으로 그 행위를 멈추거나 제어할 수도 있다는 것. 이런 미묘한 것들에 대한 설명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다. (물론, 스스로 제어하다가도 다시 '어쩔 수 없이', '자동적으로' 자신을 괴롭히는 이유는 깊이 공감할 수 없는 것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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