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확행은 너무 커서 최소확행!
1. 할머니는 하고 싶은 게 없다고 했다. 자식새끼들 키울 적엔 하루에도 열두 개씩 생각났는데, 제 살길 보내고 나니 다 까먹었다고 했다. "미루다 보면 잊는 법이다." 구십 둘 할머니의 인생 조언이 무겁게 다가온 이유다
2. 가끔씩 병원을 권하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그러고 싶진 않았다. 내 생각에 치료받을 만큼의 우울증이라면 정말 죽을 만큼 우울해야 할 것 같은데, 나는 종종 웃기도 했고, 먹을 것도 먹었고, 집 밖으로도 나갔다. 다만 집에 돌아오면 머리끝까지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었다는 게 문제였다
3. "저는... 마케터에요." 작가라는 호칭이 싫어서는 아니고, 일종의 주제 파악 같은 거랄까.
4. 대한민국 직장인들이 이런 광경을 보고 산다. 고요한 아수라장이라고 할까. 떠드는 사람 하나 없는데 제정신을 유지할 수 없다.
5. 신도림에서 홍대로 환승하는 길은 한 겨울에도 땀냄새가 난다.
6. 스피커 폰으로 통화하지 않으면 좀이 쑤시는 어머님도 익숙하고.
7. 도합 2시간 40분이나 되는 출퇴근 길을 짜증 내지 않고 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거기다 주변까지 도와주지 않으니 고통은 배로 되고. '다들 그렇게 살아'라는 말로 퉁치기엔 찝찝한 하루.
8. "그럼 문정 씨가 생각나는 건 어떤 거에요?"
"저는 즐거운 순간보다는 우울한 순간이 먼저 떠올라요."
9. 아빠는 쓸모없는 것들은 버리려고 했다. 나는 아빠가 버릴 수 있는 목록에 가족도 포함된다는 것을 알아버린 조숙한 아이였다. 물건을 반품하듯이 엄마를 외갓지벵 돌려주는 아빠를 보며, 나는 엄마보다 나를 걱정했다. 나는 돌아갈 곳도 없었다. 그래서 쓸모 있는 아이가 되려고 애썼다. 공부하는 모습을 보였다.
10. 항상 주눅 들고, 눈치 보고, 불안해하던 내 모습. 아빠가 사라져도 그 모습은 내게 언제나 남아있었다. 밖에선 티 내지 않으려고 애썼는데, 질문 하나에 들통이 난 것 같아 부끄러웠다. 나는 행복했던 기억 하나를 찾기 위해 불행한 기억 열 가지를 지나쳐야 하는 사람이었다.
11. 나는 일을 잘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이런 생각이 있었다. '일이라도 잘해야 되지 않을까?' 스물셋, 더이상 가족을 탓하기엔 TV에서 나와 동갑인 연예인들이 부모님에게 집을 선물하고 있었다. 나는 내세울 게 없었고, 남은 희망은 일을 잘하는 것뿐이었다.
12. 남들이 1시간에 할 일을 다섯 시간에 걸쳐하고, 별 것 아닌 것에 목메다 정작 중요한 일을 못하는 사람.
13. 새벽부터 일어나는 것은 생각보다 생쾌한 일이었다. 아무도 없는 강의실에 홀로 자리를 맡을 때면 절로 만족감이 흘렀다. 친구는 매일 아침 묵직한 가방에서 책과 필기구를 꺼내 책상 위에 세팅했고, 상쾌한 공기를 마셨다.
14. 그게 정말로 적당한 지는 몰라도 나는 해내려고 애썼고, 대학생이 되어서는 엄마의 기대에 어느정도 부응하는 딸이 될 수 있었다. 그쯤부터 엄마는 나를 '알아서 잘하는 딸'이라고 불렀다
15.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아진 엄마는 부쩍 자식들에게 의지했다. 그리고 그걸 신경 쓰는 건 오빠보다 내 몫인 듯했다. 오빠는 통 말이 없어 심심하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시간이 갈수록 엄마와 대화하기가 힘들었다. 내 쪽에서 할 얘기가 없었다.
소화가 하나도 안돼서 끼니마다 소화제를 먹고 있다거나, 공황장애가 심해져 점점 지하철을 타기가 힘들다는 걸 엄마에게 말할 순없었다. 어른스럽고 의젓하다던 엄마 딸이 철딱서니 없이 자꾸만 출근길에 차에 치여서 며칠이라도 쉬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는 건 당연히 더더욱 말할 수 없었다. 나는 엄마의 속을 썩이지 않는 착한 따링고, 무엇이는 알아서 잘하는 딸이니까.
디데이는 예상치 못한 날 찾아왔다. 결국 대책 없이 퇴사를 저지르고 집에서 시간을 보냈는데, 그 날은 유독 답답한 마음에 샤워를 하고 나왔다. 머리를 말리고 있던 내게 엄마가 다가왔다. 그리고 말했다
"오빠는 뭐가 문젠지 모르겠다. 너처럼 다 알아서 잘하면 좋을 텐데"
16. 프로젝트의 첫 주가 끝나는 주말, 마트에서 아내가 먹고 싶다는 25,800원 짜리 양념게장을 사주지 못한 게 계속 생각났다, 세끼면 사라질 그 반찬이 생각보다 비사다며 카트를 돌리는 내 못브은 아무리 잠을 자도 잊히지 않았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같은 날 만 원짜리 소고기를 맛있게 구워 먹은 사실은 쉽게 잊어버렸다. 이게 내가 행복을 대하는 방식이다. 나는 자잘하게 불행들을 쌓고 그걸 다 지워낼 만큼 거대한 행복이 오길 고대했다. 내 인생에는 불행밖에 없어 라고 말하면서.
17. 엄마한테 한 번도 잘해주지 않았으면서, 아프고 나니 엄마만 찾는 것도 보기 싫었다
18. 그때의 내가 어려서 할머니에게 못했다고 말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앞에서 썼다시피 조숙한 아이였다. 친구들에게는 실수로도 그런 식으로 말을 해 본적이 없다. 몰라서가 아니라 알면서도 그렇게 했다. 할머니는 그래도 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게 했다
19. 어린 시절의 나는 생각했다. 불행에도 총량이 잇을 거라고. 묵묵히 견대내고 견뎌 내다 보면 언젠가 그 지독한 것들도 찾아들고, 조금 행복해질 수도 있을 거라고, 가족들의 눈을 피해 들어갔던 화장실, 어두운 방 머리끝까지 덮어쓰고 있던 이불 속에서 사실은 그런 순간을 내내 기다려왔다,
안읽으려고 내내 눈길을 피하던 책인데, 결국 읽었다.
좋은 책이느냐 하면 네, 할테고
기억될 책이느냐 하면 아니오, 할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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