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실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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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실격

by imakemylifebeutiful 2020. 10.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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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저는 어렸을 때부터 제 가족에 대해서조차도 그들이 얼마나 힘들어하고 또 무엇을 생각하며 살고 있는지 전혀 짐작할 수가 없었고, 그저 두렵고 거북해서 그 어색함을 못 이긴 나머지 일찍부터 숙달된 익살꾼이 되어 있었습니다. 즉 저는 어느 틈에 단 한마디도 진실을 이야기하지 않는 아이가 되어버렸던 것입니다.

 

2. 미안하지만 전차 길가 약방에 가서 칼모틴 좀 사다 줄래? 너무 피곤해서 얼굴이 후끈거리고 잠이 안 오거든. 미안해, 돈은...

"괜찮아요, 돈 따위."

기뻐하며 일어섭니다. 심부름을 시킨다는 것은 결코 여자를 실망시키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여자를 기쁘게 하는 일이라는 사실 또한 저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3. 아, 저는 어째서 이럴까요? 죄인으로 포박당하자 오히려 마음이 놓이고 편안하게 가라앉다니. 그때의 추억담을 스면서도 정말이지 느긋하고 즐거운 기분이 되는 것입니다.

 

4. 여자보다는 돈. 어쟀든 시즈코를 떠나 자립하고 싶다고 혼자 생각하며 이런저런 궁리를 해봤지만 오히려 점점 더 시즈코한테 기댈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고, 가출 뒤처리라든가 이런 일 저런 일 거의 전부를 이 남자 못지 않은 고슈 여자에게 신세 지게 되어, 저는 시즈코에게 한층 더 '기죽어 지낼'수밖에 없게 되었던 것입니다.

 

5. 하느님의 사랑은 믿지 못하고 하느님의 벌만을 믿었던 것입니다. 신앙, 그것은 단지 하느님의 채찍을 받기 위해 고개를 떨구고 심판대로 향하는 일로 느껴졌습니다.

 

6. 천만 명이 하루에 세 알씩만 남겨도 살 몇 섬이 업어지는 셈이 된다든가 혹은 하루에 휴지 한 장 절약하지를 천만 명이 실천하면 얼마만큼 펄프가 절약된다는 따위의 '과학적 통계'때문에 제가 지금까지 얼마나 위협을 느끼고, 밥을 한 알남길 대마다 또 코를 풀 때 마다 산더미 같은 쌀과 산더미 같은 펄프를 낭비하는 드산 착각 때문에 괴로워하고 큰 죄를 짓는 것처럼 어두운 마음을 가져야만 했는지.

 

7. 저는 죽는 것은 아무렇지도 않았지만 다쳐서 피가 나고 불구자가 되는 것은 절대 사절이었기 때문에 요시코한테 치료를 받으면서 술도 이젠 끊을까 하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8. 죄, 죄의 반의어는 뭘까. 이건 어렵다.

저는 아무렇지 않은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습니다 

"법이지" (후엔 벌이라고 하는 사람도 나온다)

 

인간 실격이라는 제목이 너무 훌륭하고, 아주 직관적이다. 제목 곧이 곧대로 인간이기를 실격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다. 어딘가 계속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는 듯한 묘사도 여럿인데, 그러다가도 그의 삶이 지금처럼 유지되는 것이 또 굉장히 합당하다고 여겨지게 되기도 했다. 

 

 

인간 실격
국내도서
저자 : 다자이 오사무 / 김춘미역
출판 : 민음사 2004.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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