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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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by imakemylifebeutiful 2020. 10.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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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킬리만자로에 오르기 위해 석 달 동안 새벽 신문을 돌렸습니다.'한 사진 현상 업소의 광고문구. 사진작가의 모습이 담겨 있었고 그는 자랑스럽게 웃고 있었다. 정말로, 그는 석 달 동안 새벽 신문을 돌렸을 것이다. 돈보다는 체력을 기르기 위해서였겠지만. 나는 그가 부러웠다. 꿈꾸는 일을 위해 석 달을 하루같이 뭔가를 할 수 있는 그가 경이로웠다. 나였다면 단 일주일도 힘들었을 터이다. 세상은 그런 사람들 때문에 굴러간다.

 

2. 컴퓨터가 없으면 음악도 영상도 없다. 그러니 눈을 뜨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컴퓨터를 켜는 일이다. 물론 자기 전에 마지막으로 하는 일도 그것을 끄는 일이다. 창이 없는 이방에서 컴퓨터는 내 창이다. 거기에서 빛이 나오고 소리가 들려오고 음악이 나온다. 그곳으로 세상을 엿보고 세상도 그 창으로 내 삶을 훔쳐본다.

 

3. 우리는 함께 여행사에 갔다. 지도를 샀고 대형서점에 가서 여행안내책자를 구입했다. 지도를 펴놓고 도시마다 동그라미를 치며 일정을 짰다. 그건 참으로 행, 복, 한 일이었다. 지도 위엔 우리가 가야 할 도시와 산 들이 냉정한 글씨로 씌어 있었다.

 

4. 우리는 여행 가서도 그녀가 좋아하는 바흐와 너바나를 듣기 위해 소형 카세트를 샀다. 일제 워크맨이었고 성능이 좋았다. 두 개의 이어폰을 동시에 연결할 수 있는 제품이었다. 기차를 타거나 버스를 탈 떄, 우리는 하나의 음악을 함께 듣게 될 터였다. 

 

5. 우리는 다른 연인들처럼 극장에도 가지 못했고, 공원을 거닐거나 동물원의 원숭이도 보지 못했다. 멋진 식당에서 밥을 먹지도 못했고 카페를 전전해보지도 못했다. 우리가 함께한 일이라고는 함꼐 마법사들을 무찌르거나 서로 격투를 벌인 일 뿐이었다. 배달된 중국음식과 도시락, 찌개백반 따위가 우리가 함께 먹은 모든 것들이었다. 나쁘지는 않았다. 회전 돌려차기를 할 때 그녀의 얼굴에는 득의만만한 웃음이 흐르곤 헀었다. 마법사의 목을 자를 때엔 키보드를 두드리는 손에 힘을 너무 주는 바람에 키보드가 부서지는 줄 알았었다. 내게 어울리는 추억이란 그런 것들이었다.

 

6. 소설들은 대체로 일상-환각-일상이라는 순환적 이야기 구조를 밟는다. "그런 날들이 계속, 계속되었다. 바로 오늘까지."(고압선), "바람이 분다. 한 여자를 기다리고 있다.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분다. 분다"(바람이 분다), "아, 그래서 지금도 나는 궁금하다.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됐을까"(엘리베이터에 낀 그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등등 주인공들은 놀라운 사건을 겪었지만, 그것이 그들의 삶을 본질적으로 바꾸어놓지는 않는다.

 

7. 사진관집 여인은 경찰 앞에서 자신과의 관계를 잡아떼는 속물적 인간과 기약 없는 연애를 지속 할 것이며, 형사는 평소처러머 부인의 품에 안겨 잠들 것이다. 이것은 예정된 비극이다.

 

8. 그러나 그가 사랑이라는 단어를 발음하는 순간 몸이 투명해지는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결국 투명인간이 되어 직장도 잃고 가정도 엉망이 되는 은행원은 진정한 사랑이 인정되지 않는 현실 앞에 절망한다. 그가 잠시나마 애정을 바쳤던 불륜상대는 그가 부재한 사이에 옛 연인인 B와 다시 만나 섹스를 벌인다. 이러한 배반의 현실 앞에서 그는 초라한 일상인으로서의 자기를 돌아본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 남자는 있으나마나 한 존재"인 것이다.

 

9. 담배 같은 소설을 쓰고 싶었다. 유독하고 매캐한, 조금은 중독성이 있는, 읽는 자들의 기관지로 빨려들어가 그들의 기도와 폐와 뇌에 들러붙어 기억력을 감퇴시키고 호흡을 곤란하게 하며 다소는 몽롱하게 만든 후, 탈색된 채로 뱉어져 주위에 피해를 끼치는, 그런 소설을 쓸 수 있기를, 나는 바랐다.

 

매 편마다 아주 흥미로웠다. 이중적인 캐릭터들이 많아 더 읽기가 즐거웠던 것같다. 자신의 아들을 들먹이면서 경희야 사랑해같은 유치한 사진을 왜 주고 받았겠냐며 시치미 떼던 남자는 결국 당당하지 못한 연애 중이었고, 화살표가 '그곳'을 향하던 여자애에게 강해보이고 싶던 남자는, 그냥 종식이처럼 얼른 붙잡히기만을 바라는 수동적인 모습도 보인다. 그냥 참 참신하다. 내용도 너무 좋고 담배같은 소설을 쓰고 싶다던 작가의 목적이 아주 잘 달성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마지막 편인<바람이 분다>를 읽을 때는 와 어떻게 이런 표현을 썼지 하며 이마 탁 모먼트도 가졌다. 이모저모로 추천할 만한 책인 것 같다.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국내도서
저자 : 김영하(Young Ha Kim)
출판 : 복복서가 2020.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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