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이런 저런 굴곡을 거쳐, 이제 별 탈 없는 연애 중인분께는 연애의 초입을 떠올리게 되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이 책을 덮을 때쯤, 두 분의 사랑이 어쩌다가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기적적인 확률로 가능했다는 것을 실감하시면 좋겠습니다.
2. "오늘 하루는 어땠어?"
거의 매일, 틈만 나면 만나는 사이지만 대화의 시작은 늘 이 질문이었다. 안부. 오늘의 하루가, 일상이 안녕했는지를 묻는 것. 어린 날 초등학교에서 돌아오면 엄마가 만두라거나 너겟 같은 간식을 올린 식탁을 앞에 두고 사랑이 넘치는 눈으로 묻곤 하시던 모습이 떠오르는, 그런 따뜻한 물음이었다. 나는 어리광을 부리는 열두 살의 아이로 돌아간 것처럼 시시콜콜한 에피소드를 늘어놓았고,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별것 아닌 이야기를 중대한 뉴스처럼 들었다. 그 진중한 눈빛을 보며 이야기하는 것은 내 하루에 대한 고백 같았고, 고생했어, 하는 그의 웃음은 고해성사 끝에 오는 축복 같았다.
3. 엄마의 반찬에 밥 하나가 고작이던 식탁이 그를 만난 이후로 어찌나 다채로워졌는지, 좋았다. 모든 것이 다 좋은데, 그 좋음이 매일 이어져 처음 같은 감동이 아니라는 것만 나빴다. 나브다고 생각하는 내가 나쁜거겠지만.
4. 사랑해, 사랑해, 사랑하지만
5. 원나잇 스탠드, 섹스 파트너, 어장 관리, 불륜과 같은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많이 이야기하게 되니까 그 개념에 이름이 필요했겠구나 싶습니다. 일반적이지 않은 일이라면 그저 "남자(혹은 여자) 여러 명 만나는 걔 있잖아"ㅏㄹ고 하면 될 일이지, 굳이 어장 관리라는 단어를 만들어 함축시킬 필요가 없지 않겠습니까?
이게 어떻게 '있을법한' 연애소설이지, 싶으면서도 아, 맞네, 생각해보면 바람펴서 헤어진 전례 나에게도 있네요. 바람피고 고백하고 차인 친구의 전례도, 있습니다. 이 책을 통해, 연애 초기의 설렘을 다시 느껴보길 바란다는 작가의 말이 무색하게, 설렘보다는 아, 그런 연애 나도 느끼고 싶다 하는 부러움과, 지금 가지고 있는 이 기적적인 안정적 행복이 바람으로 깨지지 않을까 하는 공포가 동시에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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