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숨지 않는다

imakemylifebeutiful 2021. 5. 10. 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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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헬조선'으로 표현되는 희망 없는 삶에 대한 분노는 구조가 아니라 약자를 출구로 삼았다. 타자를 이해하려는 노력보다는 자기보호의 공포가 강하게 작동한다. 정체성은 저항의 출발점이아니라, 타자를 배제하기 위한 선긋기가 되었다.

 

2. 무료로 진료받을 수 있게 주선해주고, 그걸 보면서 진짜 내가 엄청 배웠지. 사람이 뭔가 하면 생색내고 싶잖아. 생색내다 보면 상처 주게 되고, 그러면 안 하니만 못하는 건데, 그 두분은 안 그랬어. 그래 내가 '아, 봉사는 저렇게 하는 거구나'하고 크게 배웠지.

 

3. 김복자의 첫 가출은 열입골 살 때인데, 아버지와 양아버지에 걸쳐 오랫동안 이어진 가정폭력의 누적된 영향으로 발생한 사건이다. 김복자에게 안심하고 잠들 수 있는 '집'은 이미 오래전에 '없었다'. 그는 동거남의폭력, 결혼을 약속했던 남자의 배신을 거치면서 남성에게 의탁해야 하는 삶이 여성에게 결코 안전한 보호막이 될 수 없음을 깨닫는다. 이러한 깨달음은 김복자가 '미군과 결혼해라', '영감 하나 만나 살아라', 같은 제안을 단호하게 거절하게 만들었다. 마치 그것이 여성에게 팔자를 고칠 대단한 제안인 양 제시되지만, 실상 쪽박 날 확률이 높은 도박에 불과하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꿰뚫어 본 것이다. 그는 가망 없는 운에 자신을 맡기기보다 '남자의 집을 벗어남'으로 스스로를 보호하고자 했다.

 

4. 처음에는 사람들을 이해시키려고 노력했어요. 왜 내가 집을 나올 수 밖에 없었고 집을 나오면서 감정이 어떠했고 구구절절 얘기를 했어요. 근데 어느 순간부터 제가 그 사람들을 설득하려고 너무 애쓰고 잇는 거예요. 제 얘기를 들은 사람들이 이해를 못 하니까 제 입장에선 이해를 시켜야 하는 상황이 되는 거죠. 

 

5. 개인의 상황과 필요에 따라 거주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지만 인간은 일상을 꾸리며 정착할 수 있는 장소가 필요하다. 집으로 꿈이 들어온다. 여성들은 자기만의 방이 생겼을 때 꿈을 꾸기 시작했다. 예원의 얘기처럼 집이 안정될 때 삶을 고민할 여유를 가질 수 있고 차근차근 삶의 계획을 세워 뭐라도 해볼 마음을 먹을 수 있다. 주거 불안정이 길어질수록 몸과 마음은 지치고 삶을 꾸려나갈 수 있는 힘을 모으는 데 시간이 더 걸린다.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는 힘은 단지 마음의 결단 문제가 아니다.

 

6. '저 교사가 나쁜 교사다. 좋은 교사가 많은데 일부 나쁜 교사 대문에 선량한 학생들이 피해를 입는다. 교사 전체를 매도하지 마라.' 이런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근데 나쁜 교사의 행동과 말을 허용한 문화나 사람들이 있을 거 아니에요? 어떻게 그렇게 나쁜 교사가 수백 명씩 있겠어요? 집단의 기득권을 자긴 사람들이 변해야 하니까 받아들이지 ㅇ낳는 거 아니에요? 개인의 문제가 집단의 문제인 거고 일탈로만 몰아가 ㄹ게 아니라 학교 문화 전체를 바꿔야 하는거죠. 근데 솔직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교사에게 페미니즘 교육을 한다면 어떻게 어디서부터 해야 하는지도 감이 잡히지 ㅇ낳고, 페미니즘 교육을 받은 교사들이 학교 문화를 바꿔보려고 노력을 하더라도 부장급 이상 선생님들이 바뀌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는게 아닐까 싶기도 해서요.

 

7. 이전엔 '페미니즘 교육을 학교에서 하면 얼마나 좋아', 이렇게 생각했다면 지금은 생각이 많아졌어요. '교사가 학생들한테 페미니즘 교육으 ㄹ하는 건가? 그건 좀 이상하지 않나? 왜 페미니즘 굥ㄱ조차 교사가 학생을 가르쳐야 하지? 고발한 건 학생인데 교사가 학생에게 배워야 하는 게 아닌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이 이어져요. 고발자일 때는 입장을 분명히 드러내면 됐는데 요새는 오히려 입장을 드러내지 않게 된 것 같아요. 뭔가를 말하면 꼬리를 물고 계속 생각이 나서 그걸 고려하면서 말해야 할 것 같아서요.

 

8. 학교에서 저는 늘 자기주장이 강하고 목소리가 크고 기가 센 여자의 자리로 정해져요. 제가 다혈질인 것도 맞지만 여성이어서 그런 얘기를 듣는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저 사람은 말도 많고 성격도 강한데 아무도 개한테 기 센 남자애라고 하지 않아요. 말을 잘하는 남자애는 "학생회장 해도 되겠네" 소리를 들어요. 할 말은 하는 저한테 누구도 그렇게 말하지 않아요. 그렇다고 제가 학생회장을 하고 싶다는 얘기가 아니거든요. 이런 말을 하면 "하고 싶어서 그런 거야? 진작 말을 하지", 이런 반응이 있어서요. 늘 억울하고 짜증이 났어요.

 

9. 학교에서 보면 남학생과 남교사는 비슷한 정서가 있어요. 여성이 자기 의견을 강하게 피력하면, "굳이 그렇게까지 말해야 돼?", "너무 민감한데", 그러죠. 여학생이 "그런게 아니다" 하면서 더 설명하기 시작하면 "그럼 그렇게 하든지", 이래요. 이런 남성들의 태도가 너무 싫었어요, 자기는 문제화하지 않으면서 온건한 입장인 것처럼 중립적 태도를 취하고 열내서 말하는 여성은 쨍알쨍알 거린다는 시선요. 벽에 대고 말하는 것 같아요. 열심히 말한 사람이 무안해지고 허무해져요.

 

10. '기특하다'와 '버르장머리 없다'는 한 끗 차이에요. 어른들은 스쿨미투 활동을 하는 청소년을 보고 '우리 대 못 했던 일을 너희들이 하는구나'하면서 기특해해요. 청페모가 스쿨미투 활동 중 하나로 '교권은 인권이 아니다'라는 행사를 했는데, 이 행사에 대한 기사 댓글이 "버릇장머리 없는 애들"이었어요. 기특하다와 버릇장머리 없다 둘 다 청소년을 아래로 보는 거고, 어른 마음에 들면 기특한 거고 마음에 안 들고 권력에 도전하는 행위면 버릇이 없는거죠. 

 

11. 대답하기 싫은 질문들이 많았는데 불리하게 작용할까 봐 대답을 했어요. 학폭위 위원들이 교사, 경찰관, 변호사는 남성이었고, 남학생 학부모들이었어요. 청문회처럼 제가 질문을 받고 대답을 하는 형식이었는데 질문을 하는 분들은 주로 학부모들이었어요. 저한테 책임이 있다는 뉘앙스로 질문을 한다든지 고발당한 가해자의 기분은 어떨 것 같은지를 묻는 질문도 있었어요. 질문 내용이 가해자에게 감정 이입을 하라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사실 관계를 파악하는 질문이 있을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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