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번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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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번의 일

by imakemylifebeutiful 2020. 1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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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26 - [책] - 임계장 이야기


1. 부장은 창밖을 내다보며 이곳도 만힝 달라졌다는 이야기를 했다. 새 건물이 지어지고 벤처 기업들이 건물을 임대해 사무실을 열고 국가에서 이곳을 벤처 특구로 지정한다는 소문이 2,3년 전부터 파다하다는 말이었다
그래요? 그렇군요.
그는 일부러 과장된 목소리를 냈다. 그러면서 이순간 자신이 해야 할 말이 무엇인지 필사적으로 찾고 있었다.

2. 고등학생인 아들 준오가 대학을 졸업하면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를 처분하고 한적한 시골로 이사한 뒤, 그 건물에서 나오는 임대료로 느긋하게 생활하는 꿈이 그에겐 있었다. 그러니까 그때까지 대출금 이자와 원금을 성실히 갚아야했다. 그게 아니라도 매달 빠져나가는 자도앛 할부금과 연금, 보험료와 공과금, 준오의 학비와 들쭉날쭉한 경조사비, 팔순이 넘은 양가 부모님의 병원비까지. 지출은 점점 늘고 게속 늘기만 했다.

3. 뭐가 겁이 나서.
그는 자신도 모르게 혼잣말을 하고 주변을 둘러 보았다. 언젠가부터 생겨난 버릇이었다. 특히 무언가를 골똘이 생각할 때 그랬다.
퇴근 후 집에 돌아와 양말을 벗다가, 욕실에서 양치질을 하다가, 수염이 자라난 턱을 만지작거리다가 그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무슨 말인가를 중얼거리곤 했다. 어두운 베란다에 비스듬히 상체를 기대고 서 있다가, 새벽녘에 전기포트 물이 데워지길 기다리다가 그는 혼잣말을 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응? 뭐라고 했어?
그러면 아내 헤선은 이렇게 되물었다. 그러나 그런 일이 계속 반복되자 나중에 ㄴ그러려니 여기는 눈치였다. 가끔씩은 그가 작정하고 묻는 말들도 혼잣말이려니 여기고 대꾸하지 않는 날들이 많았다. 그러면 그도 그러려니 하고 말았다. 그것이 서로에 대한 배려라는 데에 두 사람은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었다. 서로의 말을 귀담아 듣고 상대가 기대하는 반응을 보이고 대화라고 할 만한 걸 이어나가기엔 그도 해선도 고단했다.

4.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게 분명한데 다시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그는 부장이 해준 이야기를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새건물들이 들어서고 사무실들이 들어오고 이 주변이 벤처 특구로 지정될 거라는 이야기였다.

5. 아버지 입원하시면 다시 올라올게요. 잘 부탁드려요, 형부.
해선의 여동생 지선은 무거운 짐을 건네주듯 자신의 부모를 그에게 떠넘기다시피 하고는 곧장 되돌아갔다.

6. 자산에 대한 불만의 말이 떠돌 거라는 생각. 앞으로 누구의 마음도, 신뢰도 얻지 못랄 거라는 생각. 단 한 건의 게약도 성사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 회사에 불필요한 사람이 되어버릴 거라는 생각. 그런 식으로 회사가 자신을 내보내도 되는 너무나 충분한 빌미를 주게 될 거라는 생각. 생각은 불안한 족으로 계속 그를 밀어붙였고 그는 두 눈을 부릅뜨고 천장을 올려다보며 늦도록 잠들지 못했다.

7. 대화는 먼 과거에서부터 그들이 앉아 있는 시간 쪽으로 왔다. 속도는 더디도 느려서 눈치채지 못할 정도였다. 그러나 다시 주의를 기울였을 때 대화는 종규의 병실 안까지 들어가 있었다.

8. 당신은 가만히 있어. 내가 하면 돼. 그냥 둬.
식사가 끝난 뒤 페트병과 치킨 상자 같은 것을 정리하고, 남은 음식들을 한데 모으고, 설거지를 하는 동안 그는 자신이 회사로부터 날아올 소식을 이런 식으로 대비하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미뤘던 해선의 수술을 서두르고, 식구들과 저녁 시간을 보내고, 스스로에게 괜찮을 거라는 다짐을 끊임없이 반복하면서 앞으로 닥쳐올 시간을 각오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자신이 정확히 무엇을 어떻게 얼마나 대비하고 준비하고 각오할 수 있는지 알 수 없었다

9. 그가 아는 삶의 방식이란 특별할 것 없는 가정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어른이 되고, 자신이 자라온 것과 비슷한 가정을 꾸리고, 매일 같은 시간에 출근하고 퇴근하면서 자신이 선택한 것들에 책임을 다하는 것이었다.
만족스러운 삶. 행복한 일상. 완벽한 하루. 그런 것들을 욕심내어본 적은 없었다. 만족과 행복, 완벽함과 충만함 같은 것들은 언제나 눈을 감빡이는 것처럼 짧은 순간 속에만 머무는 것이었고, 지나고 나면 손에 잡히지 않는 어떤 것에 불과했다. 삶의 대부분은 만족과 행복 같은 단어와는 무관하게 흘러가고 그런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쌓여 비로소 삶이라고 할 만한 모습을 갖추게 된다고 그는 믿었다.

10. 사는 동안 그는 단 한 번도 어느 한쪽으로 완전히 기울어진 적이 없었다. 객관적이고 현실적이어야 한다는 강박은 내내 그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어느 쪽도 아닌 중립을 지키려고 했고, 어떤 순간에도 균형을 잃지 않으려고 애썼다.

11. 상호도 이제 장가갔으니 애도 낳고 해야 하는데 다달이 월세 나가면 언제 돈 모으고 언제 집 사겠나. 다만 조그마한 거라도 제집이 있으면 아무래도 낫지. 내가 돈이 있으면 보태주고 싶다가도 형편이 이러니 뭘 할 수가 없다. 네 형보단 네 사정이 낫지 싶어서 왔다.

12. 불친절하다. 작업이 더디다. 소음이 심하다. 뒷정리가 안 됐다. 설명이 없었다.
내용은 모호하고 간단해서 언제 어디서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13. 그런 후엔 하루도 빠짐없이 자신이 한 일을 구체적으로 기록하여 보고서를 올렸다. 그건 자신에게 주어진 하루의 전부였고 그는 자신이 그 하루를 어떻게 소진하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14. 다세대 건물을 헐값에 처분한 뒤로 해선과의 사이는 계속 삐걱거리고 있었다. 대화는 냉정하고 차분하게 이어지다가 거칠어졌고 막다른 곳에 이르렀다. 그러면 언성이 높아졌고 하지 않았어도 좋을 말들을 경쟁하듯 내뱉게 됏다. 그때마다 준오는 음악을 크게 틀거나 방문을 소리 나게 닫는 식으로 자신이 여전히 그곳에 있음을 알렸다

15. 포기하기가 쉽지 않지?
한참 만에 장인이 물었다. 그가 확실 한 건 아무것도 없고 그래서 다른 방법이 없다는 이야기를 변명처럼 늘어놓았을 때였다.
그만두려면 벌써 그만뒀겠지. 그렇잖나. 글쎄. 나는 잘 모르겠네. 세상도 너무 많이 변하고 내가 일할 때랑은 또 다르겠지. 하기야 살다 보면 또 포기가 안되는게 하나는 있잖나.

16. 오후의 햇살이 좁은 빌라 내부 깊숙이 밀려들고 있었다. 노부부가 사는 단출한 집 안 내부가 환해졌다. 그는 꼭 필요하다 싶은 물건들로만 채워진 실내를 훑어보았다. 제 주인을 닮은 듯한 물건들은 모두 제자리를 지키며 반듯하게 놓여 이었다. 그는 이런 고요와 안정을 얻기까지 장인 내외가 감당해야 했을 어떤 시간들을 잠깐 생각했다.

17. 희한하지. 일이라는 게. 한번 손에 익고 나면 바꾸기가 쉽지 않아. 어디, 일이라는 게, 일만 하는 법인가. 사람도 만나고 세상도 배우고 하는 거지. 요즘은 이렇게 무릎이 아프고 보니 다른 걸 했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네만 모를 일이지.

18.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야 그는 노력하겠다고 말했고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회사를 믿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해선은 내내 다른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마치 아무런 말도 듣지 못한 사람처럼 끝까지 어떤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러니니까 그것이 체념과 포기에서 비롯된 어쩔 수 없는 승낙이라는 것을 그도 모르지 않았다.

내가 이런 삶에 놓일까 두려움에 이런 책을 많이 읽는걸까?

 

 

9번의 일
국내도서
저자 : 김혜진
출판 : 한겨레출판 2019.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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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26 - [책] - 임계장 이야기

 

임계장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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