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코의 미소
<쇼코의 미소>
1. 엄마와 할아버지는 늘 무기력했고 사람을 사귀는 일에 서툴렀다. 나는 엄마와 할아버지를 작동하지 않아 해마다 먼지가 쌓이고 색이 바래가는 괘종시계 같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었다. 변화할 의지도, 아무런 목표도 없이 그저 그 자리에서 멈춰버린 사람들이라고.
2. 나는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지만 이상하게도 쇼코의 그 말은 내 마음에 분명한 자국을 남겼다. 쇼코의 말에는 힘이 있었다
3. 어떤 연애는 우정 같고, 어떤 우정은 연애 같다. 쇼코를 생각하면 그 애가 나를 더 이상 좋아하지 않을까봐 두려웠었다
4. 마음 한쪽이 부서져버린 한 인간을 보며 나는 무슨 일인지 이상한 우월감에 휩쌓였다.
5. 와세다 대학에 합격했는데 가지 못했다고? 할아버지의 투석 치료 때문이라고 들었어, 따위의 말들을 아무 생각도 없이 내뱉었다. 말을 하면서도 내가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고 있다고 느꼈고 그 두렵고도 흥분되는 기분에 취해서 더 많은 선들을 건너버렸다
6. 그래서 꿈은 죄였다, 아니 그건 꿈도 아니었다
7. 나는 이 글에서 여러 번 할아버지 답지 않다는 말을 썼다. 그런데 이제는 내가 생각했던 할아버지는 그저 그의 일부분일 뿐이었으리라고 생각한다. 물리적인 시간으로 따져도 나는 그의 삶의 5분의3을 알지 못한다.
누군가의 잘잘못을 따지고 싶은 생각은 없다. 소유의 삶에서 할아버지는 그저 소파자리만 지키는 사람이었으나, 쇼코의 등장으로 할아버지의 새로운 면을 알게 되었던 것 뿐이다. 소유는 그런 할아버지를 아직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겠지. 내게 늘 단면만 보여준 사람이 갑자기 그 이면을 보였을 때 그를 오롯하게 받아들이는 일은 절대 쉽지 않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다만, 할아버지와 함께 한 마지막을 잘 흡수한 소유가 부럽다. 할아버지의 인생 중 5분의 2의 시간을 이해하고, 그 시간을 만끽한 소유에게.
<신짜오, 신짜오>
1. 응웬 아줌마는 나에 대해 많은 것을 물어봤다. 한국에서 다니던 학교는 어땠는지, 베를린에서의 생활은 만족스러웠는지, 바다를 가보았는지, 한국의 바다는 어떤 색인지, 가장 좋아하는 독일 음식은 무엇인지. 아줌마의 질문은 공부는 잘하냐, 왜 이렇게 키가 작냐, 커서 뭐할 거냐 물어대는 다른 어른들의 것과는 달랐다. 진심 어린 관심을 받고 있다는 기쁨에 나는 두 볼이 빨갛게 달아오를 때까지 아줌마 앞에서 떠들어댔다
2. 열한 살 때 동생이 태어난 이후로는 무슨 일을 하든 애처럼 굴지 말라는 말을 들었다. 존재감이 없는 아이들이 보통 그렇듯 어른들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는 컸다
3. 그런 아이들은 다른 애들보다도 훨씬 더 전에 어른이 되어 가장 무지하고 순진해 보이는 아이의 모습을 연기한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통해 마음의 고통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 각자의 무게를 잠시 잊고 웃을 수 있도록 가볍고 어리석은 사람을 자처하는 것이다. 진지하고 냉소적인 아이들을 어른스럽다고 생각했던 그때의 나는 투이의 깊은 속을 알아볼 도리가 없었다
가장 안타까운 이야기로 기억된다. 고립되고, 배척되는 타지에서, 투이는, 응웬네 가족은 늘 '나'의 가족에게 친절하다, 베풀고, 초대하고, 친절하면서 우드스탁이라는 별명을 지어줄 정도로 호의적이었다. 나'도 그저 그 일원이 되고자 하는 아이였을 것이다. 아이는 어른들이 지키고 있는 선을 알 수 없고, 그 선을 지나보고, 걸려 넘어지면서 어른이 되는 것이다. 하여 돌이킬 수 없는 관계의 종결 이후, 난 여전히 독일에 거주하고 있는 응웬씨와 망가져버린 '나'의 재회가 가장 마음에 남는다. 엄마가 죽었다고 전할 수 있지만, 그 말을 전달하지 않음으로 응웬씨에게 선을 지키는 '나'의 모습이
<한지와 영주>
1. 사랑과 애착을 구별해야 한다면서, 나를 위해서 야생동물들을 곁에 두려는 생각은 진실한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했어.
2. 한지는 밖에서 맛있는 것을 먹을 때도, 여자애랑 데이트를 할 때도, 클럽에서 춤을 출대도, 노래를 부를 때도 레아를 생각한다고 했다
3. "기억은 재능이야. 넌 그런 재능을 타고났어" 할머니는 어린 내게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그건 고통스러운 일이란다. 그러니 너 자신을 조금이라도 무디게 해라. 행복한 기억이라면 더더욱 조심하렴. 행복한 기억은 보물처럼 보이지만 타오르는 숯과 같아. 두 손에 쥐고 있으면 너만 다치니 털어버려라. 얘야, 그건 선물이 아니야"
꽤 집중해서 읽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집중에 이입까지 필요한 소설이었다. 결국 한지는 영주에게 무엇이 서운했는지 명백하게 밝히지 않고 그저 그렇게 이별하기 때문이다. 만약 이입하며 읽었으면 한지의 마음에 어떤 틈이 생겼었고, 그 틈이 왜 커졌는지 알게 될까?
다시 되짚어 생각하자면, 영주가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지 않아서 일까 싶다. 나로 가득할 일기장에 너 애기는 별로 없다고 말할때. 우리가 이 채플을 떠나면 다시 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틈을 아예 갈라버린 걸까?
<먼 곳에서 온 노래>
1. "소은, 어린애들은요, 어른이 한 말을 다 진짜로 믿고 받아들어요. 평생 동안 그 말과 함께 살아가는 거지요. 너는 아무것도 아니야. 너는 아무것도 아니야"
2. 처음으로 미진 선배는 내 시선을 피하지 안핬고, 나를 지지하는 눈빛을 보내줬다. 적어도 나는 선배의 눈빛을 그렇게 기억한다
3. 이 작은 집단에서도 자기보다 약한 사람 위에 서야 후련한 사람이 무슨 민주주의 운운이에요. 당신 같은 사람은 차라리 독재가 편할 거야. 인간이 평등하다는 개념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잖아요
<비밀>
할머니 말자가 지민을 기억하는 모습에 마음이 많이 아팠다. 우리 할머니가 나를 이렇게 추억할까 하는 걱정이 들어 더 마음이 시리기도 했으나, 우리 할머니는 이렇게 감성적이지 않다는 현실을 빨리 깨워냄으로서 정신을 바짝 차렸다. 지민은 어떻게 갑자기 세상을 떠났을까, 그리고 왜 아픔은 아픔을 가진 사람들에게 더 쏟아져 올까. 암에 아픈 사람은 왜 또 암에 취약해지고, 그들을 보살펴야 하는 사람들은, 왜 그로 인해 더 큰 질병에 맞서야할까. 그들에게 죽음은 어디서든 언제든 성큼성큼 뛰어온다. 나에게도 그럴까? 언제든 악몽은 성큼성큼 내게 현실로 뛰어오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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