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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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

by imakemylifebeutiful 2021. 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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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 사람이 일하는 대형마트의 휴무일에 맞춰 우리의 만남도 대체로 보름마다 이뤄졌다. 함께 앉아 있던 놀이터 주변에 개나리가 피어 있으면 보름쯤 뒤에는 공원에서 만개한 벚꽃이 보이고, 다시 보름쯤 뒤에는 동네 곳곳에서봉오리를 터뜨리는 목련을, 그다음 보름쯤 뒤에는 집집마다 하나쯤은 있는 자목련을, 그 다음엔 어디든 보이는 나무마다 내려앉은 연둣빛을 볼 수 있었다.

 

2.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건 너 자신밖에 없다고. 네가 끌어안고 있는 새끼들을 생각하라고.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것들에게 그늘을 만들어야겠냐고. 동생은 좀처럼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나는 차분히 설명하고 또 설명했다. 결론은 단순했다. 지옥에서 벗어나는 것부터 하자. 인생을 허비할 필요가 없다, 가족들이 도우면 이혼 절차를 밟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아이들은 같이 키우자. 동생의 눈물이 그치자 날이 밝아오기 시작했다. 어느새 창박으로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동생을 지옥에서 구원해준 본인의 인생이 지옥으로 변하는 것에 대한 묘사가 자세하다.

 

3. 가난했던 연애였지만 가난한 사랑으로 기억되진 않았다.

 

4. "그 책임을 왜 당신이 져야 하는데요."

"나는 이미, 진작에..."

쓸모가 없는 사람이 되었으니까, 라는 말은 차마 꺼내지 못했다. 그 사람은 몇 시간에 걸쳐, 며칠에 걸쳐 나를 설득했다. 잘못 생각하고 있다, 결국 후회할 일이라고, 옳지 않은 선택이라고 반복했다. 나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정해진 문제였다. 결국 내가 그 사람을 떠나보낸 것이었다.

 

5. 그 사람은 다 하라고 했다. 눈치 볼 것도 없이, 기죽을 것도 없이 천천히 다 해보라 했다. 그러다 지치면, 재미없어지면, 지루하거나 재미없어지면, 지루하거나 외로워지면 자기에게 오라 했다. 늘 같은 자리에 있을 것이라고, 언제든지 나를 맞이할 거라고 했다. 그동안 기다렸던 것처럼 앞으로도 게속 기다리겠다 했다. 더없이 따뜻한 청혼이었다.

 

이런 가족이 많을테고, 나도 그러한 책임감을 느껴왔다. 가족은 희생 공동체이고, 누군가의 빈자리를 여성이 채워주길 바란다. 엄마의 부재를 그 집의 딸이. 아내의 부재를 그 집의 딸이. 딸밖에 없는 집은 아빠의 부재를 장녀가 대체해야 한다. (아니라고 말할 사람들은 겪어봐주세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이제 엄마가 없으니까, 네가 아빠와 동생, 오빠를 잘 돌봐야지." "식사는 잘 챙겨드리고 있니?" "이제 아빠가 없으니까, 네 앞길은 네가 책임져야지." 하는 중에 장녀는 여동생과 남동생의 용돈을, 핸드폰을, 간식을 챙겨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이기적인 아이가 되버리거든요.) 

 

동시에 저런 남자가 있을까? 언제나 기다린다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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