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린이에게 '착하다'는 말을 잘 쓰지 않는다.착한 마음을 가지고 살기에 세상이 거칠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렇기 때문에 착하다는 말이 약하다는 말처럼 들릴 떄가 많아서이기도하다. 더 큰 이유는 어린이들이 '착한 어린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 두려워서다. 착하다는 게 대체 뭘까? 사전에는 '언행이나 마음씨가 곱고 바르며 상냥하다'고 설명되어 있지만, 실제로도 그런 뜻으로 쓰이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보다는 어른들의 말과 뜻을 거스르지 않는 어린이에게 착하다고 할 떄가 더 많은 것 같다. 그러니 어린이에게 착하다고 하는 건 너무 위계적인 표현 아닌가.
2. '착한 어린이'라는 말에는 '남의 평가'가 들어가게 마련이다. 이때 '남'은 주로 어른들이다. 부모님, 선생님, 산타 할아버지 같은.
'착하다'는 게 나쁘다는 게 아니다. '착한 어린이'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어른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는 어린이를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어린이를 상대로 한 범죄는 어린이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으로 시작될 때가 많다. 잃어버린 강아지 찾는 걸 도와 달라거나 짐 옮기는 걸 도와 달라는 식으로, 어린이의 착한 마음을 이용해서 어린이를 유인하는 범죄 이야기를 들으면 머리에 불이 붙는 것 같다. 슬프고 두려운 일이지만,가정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 부모를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착한 어린이가 되려고 애쓰다 멍드는 어린이가 어딘가에 늘 있다.
3. "그것도 좋은 말이야 그런데 보통은 '무엇을 하지 말자'보다 '무엇을 하자'고 하는 게 남을 설득할 떄 더 좋은말이야. 예지가 관심 있는 환경 운동으로 생각해 보면, '종이컵을 쓰지 말자'보다 '개인 컵을 가지고 다니자'가 더 효과적인 것처럼."
4. 선생님한테 선물을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이 책을 샀는데 나중에 형아가 독서교실 갔다 와서 이 책 독서교실에 있다고 하는 거에요. 그래도 선생님드리고 싶어요. 제가 편지도 썼어요.
자람이가 가고 보니 편지에는 이런 대목이 있었다.
"이 책이 선생님한테 있잖아요? 하지만 다 똑같은 책이어도 이 책엔 제 마음이 있어요"
5. 첫 수업 때 나는 어린이에게 '선생님이 모를 것 같은 나에 대한 다섯 가지 사실'을 말해 달라고 한다. 그리고 학교나 가족 관계, 눈에 띄는 재능 같은 것은 이미 부모님꼐 들어서 알고 있다고 말해 준다. 그렇게 해서 최근에 들은 자기소개들은 다음과 같다.
"물고기(구피)를 기른다. 피자보다 치킨(안 매운 양념)을 좋아한다. 강아지를 좋아한다. ㅇㅎㅈ이랑 친한데 1학년 때부터 친했지만 2학년 때 전학 온 애랑 같이 놀면서 더 친해졌다. 그림 그리기보다 책(만화책) 읽기가 좋다"
6. 가해자가 어렸을 때 부모의 이혼, 폭력 등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 형을 낮추는 이유였다. 사망이라는 돌이킬 수 없는 최악의 결과 앞에서도 가해자의 사정을 헤아려 준 것이다. 형을 모두 채운다 해도 가해자는 중년에 자유를 찾는다.
가해자가 성장 과정에서 겪은 일을 범행을 정당화하는 데 소비하는 것은 학대 피해 생존자들을 모욕하는 일이다 '학대 대물림 '은 범죄자의 변명에 확성기를 대 주는 낡은 프레임이다. 힘껏 새로운 삶을 꾸려 가는 피해자들을 '불우한 가정에서 자란 에비 범죄자'로 보게 하는 나쁜 언어다.
7. 그러다 어린이가 두고 간 물건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날 가방에서 제일 먼저 꺼낸 것, 즉 제일 자랑하고 싶었던 물건 일 때가 많다. 그 위에 종이와 책 등이 뒤덮이는 데다 집에 갈 때쯤이면 잊어버려서 물건만 덩그러니 교실에 남게 되는 것이다. 방과 후 교실에서 만든 스노볼이나 생일 선물로 받은 레고 피규어, 귀여운 여우가 그려져 있는 핫팩 등, 제일 자주 발견하는 건 역시 지우개다. 왜 그런지 어린이가 두고 간 지우개에서는 나름의 역사 같은 게 느껴진다. 아무렇게나 닳아 있고 별 특징이 없는데도 그렇다. 손에 쥐면 따뜻하다. 이런 자잘한 물건들에는 이름을 써 붙여서 눈에 잘 띄는 곳에 둔다. 다음에 왔을 때 찾아가져갈 수 있도록.
8. "어휴, 집에서는 날마다 전쟁이에요. 선생님은 남의 집 애라 예쁜 것만 보이는 거에요. 아픙로도 선생님은 그렇게 예쁘게만 봐주세요."
9. 여행지 관련 안내소 직원에게 엄마 아빠가 지도며 상품 할인 쿠폰 등을 받고, 이런저런 안내를 받는 동안 데스크 위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고 싶어서 기를 쓰는 어린이를 본 적이 있다. 불편한 자세로 딱 붙어 서서는"그게 뭐야?" "어디로 가래?" "나도 볼래"라며 계속해서 질문과 의견을 쏟아 냈다. 그전 같았으면 '어린이들은 밖에 나오면 말을 더 안듣는다더니, 정말 보채는구나'하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런데 그떄는 독서교실에서 어린이를 만나기 시작한 뒤여서인지 저 어린이가 얼마나 불편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 와서 들뜨고 이것저것 궁금한 것은 나나 어린이나 마찬가지일 거싱다. 중요한 정보가 오가는 대화에 참여하기는 커녕 뭐가 어떻게 되어 가는지 제대로 볼 수조차 없으니 얼마나 답답하겠는가.
10. 어린이가 일으키는 말썽, 장난, 사고의 많은 부분은 어린이가 작다는 사실과 관련이 있다. 어린이가 의자에 앉아 발을 가만두지 못하고 흔들어 대는 것은 발이 땅에 닿지 않기 떄문이다. 땅에 닿는다면 흔들려야 흔드 ㄹ수도 없을 것이다. 어린이가 위험을 무릅쓰고 책장을 기어 올라가 높은 데 있는 물건을 꺼내려는 것은 책장이 크고 튼튼해 보이기 때문이다. 기어오르지 않으면 손이 닿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세 번째 계단에서 뛰어내리는 데 성공했으니까 다섯 번째 계단에서도 될 것 같아서 시도했다가 다치고 혼난다. 미술관은 어차피 넓으니까 괜찮을 것 같아서 뛰어다니다가 야단을 맞는다.
11. 어린이는 공공장소에서 예의를 지켜야 한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 어디서 배워야 할까? 당연하게도 공공장소에서 배워야 한다. 다른 손님들의 행동을 보고, 잘못된 행동을 제지당하면서 배워야 한다. 좋은 곳에서좋은 대접을 받으면서 그에 걸맞은 행동을 배워야 한다. 어린이가 어른보다 빨리 배운다는 것은 우리 모두 아는 사실이다.
12. 어린이가 그림을 망쳤을 때 "다 소용없는 일이란다. 구겨 버리렴."이라고 말할 사람은 없다. 고칠 수 있는지 보고, 안 되면 새 종이를 주고, 다음에는 더 잘그리도록 격려할 것이다. 우리 자신에게도 똑같이 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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