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 대한 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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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대한 예의

by imakemylifebeutiful 2020. 9.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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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린 인권을 우습게 아는 공직자와 기업인, 세월호 참사를 "교통사고"라 말하는 정치인들에게 신경이 곤두섭니다. 성범죄에 주먹을 주기ㅗ 분노하고, 못된 막말을 참지 못해 씩씩거립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제발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라는, 사람에 대한 예의를 지키라는 요 구 아닐까요?

2. "내 말을 정확하게 옮겨줘. 내가 물은 건 그 얘기가 아니잖아.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어디까지나 계약관게이고, 어디부터가 아닌지가 모호했다. 말은 갈수록 짧아졌다. 길게 말해봐야 뜻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을테고... 반말은 '경제적인'의사소통 방식이 아닌가. 권력의 야릇한 감칠맛에 길들여졌다.

3. 비극은 '나는 남들과 다르다'고 믿는 데서 출발한다. 내가 만약 노예제 사회에서 태어났다면 노에로도, 주인으로도 '잘' 살았을 것이다. 지주 밑에서 마름 역할도 유능하게 해냈을지 모른다. '소작농에게 나만큼 잘해주는 마름은 없을 것'이라고 자부하면서

4. 우리 인간은 '같음'보다 '다름'에 주목해 나누고, 차별하려 든다. 아마 그것이 생활에 유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같은 사람은 같게, 다른 사람은 다르게 대하는 편이 편하고 효율적일 것이다. 우리는 원시 시대의 식별법에서 그리 멀리 진화하지 못했다.

5. 흑화. 평범했던 사람이 어떤 사건을 계기로 검게, 냉혹하고 잔인하게 변하는 걸 이야기하지. 난 흑화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네. 알을 깨고 나와 아프락사스를 만나는 순간인데, 그걸 왜 나쁘다는 건지 모르겠더군. 흑화는 절대 나쁜 게 아니네. 진짜 어른이 되는 거니까.

6. "내가 이러는 건 다 조직을 위해서야.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자는 게 아니야"
"지금 내가 이러는 건 나중에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서야. 이 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라고."
그렇게 흑화는 완성되네. 웃기는 건 흑화를 하면 사람의 말과 행동이 달라진다는 걸세. 눈빛부터 달라지기 시작하지. 유연했던 사람이 갑자기 고집을 피운다든가.

7. 조직에서 잘나가는 인간들을. 오너나 상관 앞에서는 자기 간이라도 빼줄 듯이 살갑게 굴다가도 직원들 앞에만 서면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지. 오너가 그걸 모르는 것 같아서 너무 안타깝다고? 이보게, 친구. 그들은 다 알고 잇네. 알고도 모르는 척할 뿐이지. 왜냐고? 그게 편하거든. 말 잘 듣는 '나쁜 놈'하나가 분위기를 휘어잡으면 오너 자신은 품위 있게, 우아하게 웃고만 있으면 되거든. 그 '나쁜 놈'이 조직을 망가뜨릴 지경이 되면 다른 '나쁜 놈'으로 대체하면 되는거고...
역사 드라마를 보면 충신이 왕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눈물을 흘리잖나. 왕이 누가 충신이고, 누가 간신인 줄 왜 모르겠나. 알면서 간신을 쓰는 이유는 그만큼 편하기 때문이지. 왕이 무슨 생각을 품고 있으면 귀신같이 알아차리고, 굳이 속마음을 입술로 옮기지 않아도 다 알아서 해주지.

8. 결핍은 사람을 어디로든 나아가게 하지. 그게 지옥이든, 천국이던, 연옥이든. 어떤 선택을 하든 자네의 자유네. 남들이 자넬 비난할 수 있어도 막아 설 수는 없지.

9. 미끼를 물었기 때문에 불행이 시작됐다는 건 이 사회의 오래된 우화다. 성폭행 책임을 피해자에게 묻는 현실이 우화가 살아 있다는 증거다.

10. 나는 성폭행을 당한 순간 피해자가 되었고 지금가지도 여러 이름을 갖고 있지만 그 사실에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렇게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으나 현자 나는 '생존자'보다는 '피해자'를 선호한다. 일어난 일의 엄중함을 깎아내리고 싶지 않다. 희망의 여정을 걸어와 승리를 쟁취한 척하고 싶지 않다. 모든 것이 무사한 척하고 싶지 않다.

11. 우리가 우리 것이라 믿는 기억들이 실은 이식된 것인지 모릅니다. 과거의ㅡ 기억을 떠올려보세요. 내 기억과 내 기억이 아닌 것들이 복잡하게 뒤엉켜 있지 않나요? 내 기억이라는 것들이 TV에서 봤거나, 영화에서 스쳐갔거나, 책에서 읽었거나, 뉴스에서 접한 것들 아닌가요? 내 기억 가운데 몇 퍼센트나 온전히 나의 것일까요?

12. 개겨서 과연 달라지는 게 없는가. 달라지는게 분명히 있다. 개기는 사람 자신이다. 개기면서 결심이 단단해지고 확고해진다. 다시 싸워야 할 때 웬만한 충격엔 흔들리지 않는다. 실패의 의미도 달라진다. 실패했을지언정 원칙을 지키고 주장함으로써 가치 있는 실패가 된다.

13. 가끔 나 자신을 보면 여러 색의 크레용으로 덧칠한 그림 같다. 조금만 색깔을 벗겨내면 다른 색깔이 나온다. 점잖음 밑에 수줍음이 있고, 수줍음 밑에 냉정함이 있고, 그 밑에 소심함, 생각 없음, 쾌활함, 우울함 같은 것들이 끝없는 퇴적층을 이루고 있다.

14. 아버지가 원망스러웠다. 그는 악착같은 게 없었다. 직장이 생기면 생기는 대로, 돈이 벌리면 벌리는 대로 살았다. 친구들과 만나 술 한잔 걸치면 그것으로 그만인 사람이었다. 천성이 착했고, 싫은소리를 못했다. 그렇다고 보증을 서서 문제를 일으키거나 무슨 큰 사고를 친 적도 없었다. 다만 돈을 벌어오지 못할 때가 많았고, 집안 형편을 남의일 보듯 했을 뿐이다.

15. 자신이 속한 분야의 화제에서 한 발짝만 벗어나도 아무것도 모르는 깜깜 절벽이 된다. 언제부턴가 기자들이 쓰는 기사나 칼럼을 읽으면 '우린 우물 안 개구리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자신이 들어간 있는 우물이 온 세상이라고 믿는 개구리

16. <대법원, 이의 있습니다>초고를 넘겼는데 편집자에게서 따끔한 지적이 돌아왔다. 글 어딘가에 쓰였던 '여기자'란 표현에 대해서였다. '여기자'에서 '여'를 빼라고 빨간색 펜으로 돼지꼬리 표시가 돼 있었다. 한마디 부연설명도 없었지만 나는 얼굴을 붉혔다.
왜 '여기자'라고 쓴 걸까. '기자'라고 써도 아무 문제가 없는대.. 그것이 팩트라서? 같은 팩트라도 '남기자'라고는 안 쓰지 않는가. 그 다음부터 나는 '여'자에 민감해졌다. 여교사,여검사, 여판사, 여교수.. '여'라는 접두어가 들어가 있으면 무조건 뺀다.

17. 자기보다 못하다고 얕보는 자들에게 제대로 대접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면 화를내고 토라지지. "그들은 우쭈쭈 해줘야 좋아해요." 젊은 판사들과 소개팅해봤다는 여성들 얘기야. 어디 판사 뿐이겠어? 검사, 국회의원, 공무원, 기자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증상이지

18. 프로는 운에 모든 걸 걸지 않는다. 더 확실하게 취재했어야 했다. 그래서 검찰 수사에 기대지 않고도 그들을 꼼짝 못하게 했어야 했다

19. 기자들 사이에 내려오는 노하우 중에 '70%룰'이라는 게 있다. 의혹을 제기하는 기사는 취재한 것의 70%만 쓰라는 것이다. 나머지 30%는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항의가 들어오거나 법적 문제가 생겼을 때 제대로 대응할 수 있다. 취재한 내용을 100% 기사화하는 것은 위험하다. 120%, 130%로 부풀려 쓰는 건? 섶을 지고 불속에 뛰어드는 격이다.

20. '피해자다움'이란 21세기 한국에서 절찬리에 판매되고 있는 이미지 상품이다. 피해자는 흠 한 점 없이 순수해야 한다. 슬픔을 속으로 삭여야 한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무리지어 분노를 표출하거나 악다구니를 써서는 안된다. 그것이 피해자다움의 콘텐츠다. 이런 사회에서 피해자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스스로를 검열하게 된다. 지금 남들 눈에 비치는 내 모습이 피해자 같을까. 표정이나 옷차림이 가식적으로 보이지 않을까. 억지 쓴다고 욕먹는 건 아닐까. 피해자가 세상을 떠난 경우 유족들은 더 곤혹스러운 상황에 놓인다. 왜 자꾸 유족들이 목소리를 높여? 그런 사고를 당신들만 당했어? 도대체 돈을 얼마나 받으려고 이래?

 

사람에 대한 예의
국내도서
저자 : 권석천
출판 : 어크로스 2020.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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