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의미 없는 질문'이란, 답의 옳고 그름을 논리적으로 판정하기 힘든(혹은 판정할 수 없는)질문을 말한다. 작품을 쓴 작가 본인조차 과연 판정할 수 있을지 의심스러운 것들이다.
2. "사실 나는," 여자친구의 오빠가 말했다. "사요코가 자살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 번도 안 해봤어. 이 세상 사람이 몽땅 자살해도 그애만은 꿋꿋이 살아남을 거라고 안이하게 생각했지. 환멸이니, 마음의 어둠이니, 그런 걸 혼자 떠안는 타입으로는 도무지 보이지 않았거든. 확실히 말해, 속이 얕은 애라고 생각했어."
3. 지극히 조십스럽게 표현해서, 나와 아버지의 관계는 그다지 우호적이라고 할 수 없었다. 이유는 뭐 여러 가지지만, 몸 곳곳으로 전이하는 암과 심각한 당뇨병으로 구십 년에 걸친 인생의 막을 내리기 직전까지, 아버지는 나와 이십 년 넘게 거의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그것을 '우호적 관계'라고 하기에는 어느 관점에서 봐도 상당히 무리가 따를 것이다. 마지막에 가서 소소한 화해 같은 것을 했지만, 그것 역시 화해라 하기에는 너무 늦은 감이 있었다.
그러나 물론 멋진 기억도 있다.
4. 자신이 못생겼다고 자각하는 못생긴 여자는 그리 많지 않고, 그것을 사실 그대로 왜곡 없이 받아들이고, 나아가 얼마간의 즐거움을 발겨할 수 있는 여자는 전무하다고는 할 수 없어도 압도적으로 적을 테니까 그런 의미에서, 그렇다, 그녀는 실로 범상치 않은 존재였다. 그리고 그 범상치 않음은 결과적으로 나뿐 아니라 적지 않은 사람들을 그녀 주위로 모이게 했다. 자석이 오만 가지 형태의 유용무용한 쇠 부스러기를 끌어당기듯이.
책을 연속해서 읽지 않고, 띄엄띄엄 시간이 걸려 읽었다. 책이 어려워서는 아니고, 그냥 모쪼록 책을 집중해서 읽기 싫은 아무것도 안하는 무료한 날들의 연속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은 어렵지 않고, 금방 내용을 떠올릴 수 있어 좋았다. 일인칭 단수는 마지막 편의 제목과 같았는데, 더 확장된 이야기가 있었으면 하는데 싶게 끝나버렸다. 한 여자가 주인공을 3년전에 만났다고 하면서, 그러나 기억할 정도로 이야기를 나눈 것은 아니라고 한다. 와중에 주인공은 여자를, 여자가 말한 사건에 대해서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그리고 <시나가와 원숭이의 고백>은 그렇게 마무리 된점이 가장 소설을 감칠맛나게 하는 마무리라고 생각하면서도, 그 원숭이가 여전히 살고 있는지와 같은 후일담이 궁금한 것은 어쩔 수가 없더라.
책이 전반적으로 하루키의 이야기 같았다. 물론 하루키가 쓴 이야기니, 하루키의 이야기가 맞고, 말도 안되는 소재가 넘쳐나니, 절대 경험적인 이야기라고 할 순 없다. 그러나 그냥 하루키의 이야기처럼 들렸다. 그가 정말 겪었으나, 너무 황당한 사건이라 차마 밝히지 못하고 소설에 담은 이야기들. 무겁지도, 슬프지도 않게 담담히 적어낸 문체가 매력적인 책이다.
<출판사 문학동네>
중앙역
1. 밤에는 훔친 물건들을 머리맡에 두고 눕는다. 모자로 얼굴을 덮고, 박스를 쌓아 벽을 만들어도 쉽사리 잠들 수 가 없다. 나는 살대가 부러진 우산, 밑창이 떨어진 슬리퍼, 구멍난 담요 같은 것
sunaworld.tistory.com
바깥의 여름
1. 아파트 매매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집에 와 티브이를 켰는데, 예능 프로그램에서 연예인들이 '신문지 게임'을 하고 있었다. 발 디딜 면이 점점 줄어드는 공간에서 최대한 많은 사람이 오래 버
sunaworld.tistory.com
곰의 부탁
1. 사방에 불그스름한 빛이 퍼지기 시작했다. 곧 해가 뜰 것 같았다. 나는 더 걷기가 싫어서 쭈그리고 앉아 파도 소리를 들었다. 처업, 처업, 처업. 거대한 동물이뭔가를 천천히 먹어 치우는 소리
sunaworld.tistory.com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칵테일, 러브, 좀비 (0) | 2021.08.13 |
---|---|
그래서 죽일 수 없었다 (0) | 2021.08.12 |
오늘 이 슬픔이 언젠가 우릴 빛내줄 거야 (0) | 2021.07.27 |
중앙역 (0) | 2021.07.26 |
그러라 그래 (0) | 2021.07.2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