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젓가락으로 굵은 면발 하나를 건져 먹는다. 젊은 시절엔 이런 면 음식을 즐겨 먹었다. 세 끼 중 한끼를 꼭 면으로 해결할 정도였다. 면은 여전히 좋아하지만 이제는 먹고 나서가 문제다. 좀처럼 소화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더부룩한 배를 어루만지고 이리저리 걸어다니고 잠자리에 들었다가 다시금 몸을 일으키는 짓을 얼마나 반복해야 하는지. 즐거운 일들을 하나씩 잃어 가는 것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말이다.
2. 운동화의 뒤축이 비스듬하게 닳아 있다. 올이 풀어진 청바지 밑단도 지저분하긴 마찬가지다. 이런 사소한 것들이 인상을 결정한다는 것을 얘는 정말 모르는 걸까. 곤궁한 처지, 게으른 성격, 무신경하고 둔한 품성 같은, 남드링 알 필요 없는 너무나 사적인 것들을 왜 이토록 쉽게 드러내 보이는 걸까. 왜 남들이 자신을 오해하도록 내버려 두는 걸까. 고상함과 단정함. 말끔함과 청결함. 누구나 최고로 치는 그런 가치들을 왜 깡그리 무시하기만 하는 걸까. 나는 간신히 하고 싶은 말을 참는다.
3. 그러면서 내일 당장 이들 중 하나가 죽었다고 해도 놀라울 게 없다고 생각한다. 아까운 죽음이라니. 오히려 살 만큼 살다 간 사람이라고 비아냥거릴지도 모르지. 남은 사람들은 아쉬워하거나 안타까워하는 마음 대신 냉정한 눈으로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해 점수를 매길 것이다.
4. 끝이 없는 노동. 아무도 날 고된 노동에서 구해 줄 수 없구나 하는 깨달음. 일을 하지 못하게 되는 순간이 오면 어쩌나 하는 걱정. 그러니까 내가 염려하는 건 언제나 죽음이 아니라 삶이다. 어떤 식으로든 살아 있는 동안엔 끝나지 않는 이런 막막함을 견뎌 내야 한다. 나는 이 사실을 너무 늦게 알아 버렸다. 어쩌면 이건 늙음의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이 시대의 문제일지도 모르지.
5. 마음은 왜 항상 까치발을 하고 두려움이 오는 쪽을 향해 서있는 걸까.
6. 나는 내 딸이 이렇게 차별받는 게 속이 상해요. 공부도 많이 하고 아는 것도 많은 그 애가 일터에서 쫓겨나고 돈 앞에서 쩔쩔매다가 가난 속에 처박히고 늙어서까지 나처럼 이런 고된 육체노동 속에 내던져질까 봐 두려워요.
7. 딸에 대한 기대를 거두지도 유지하지도 못하는 어머니에 비해 딸은 일찌감치 어머니를 떠난다. 일찍이 자신의 성 정체성을 깨달은 딸은 아프리카 봉사 활동을 다녀온 뒤 어머니가 "상상하지도 않은, 허락하지도 않은 독립"을 감행해 버린 것이다. 이처럼 '남근적 딸'이기를 거부하는 딸은 그러나 경제적 독립을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언제나 금기어인 엄마 와 딸.
오늘은 그 방어적인 마음을 열어보았다.
이해할 수 있을까 싶어 시작했지만, 결국은 같은 곳에 머무르고 있다.
김혜진 작가의 책을 모두 구매했다.
이것이 진짜 상상으로만 나올 수 있는 글들인가?
빙의가 아니라면, 삶을 더 살아본게 아닌가 하는 생각들이 넘친다.
<김혜진 작가의 책>
중앙역
1. 밤에는 훔친 물건들을 머리맡에 두고 눕는다. 모자로 얼굴을 덮고, 박스를 쌓아 벽을 만들어도 쉽사리 잠들 수 가 없다. 나는 살대가 부러진 우산, 밑창이 떨어진 슬리퍼, 구멍난 담요 같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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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번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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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민음사>
오라, 거짓 사랑아
<유방> 윗옷 모두 벗기운 채 맨살로 차가운 기계를 끌어안는다 찌그러지는 유두 속으로 공포가 독한 에테르 냄새로 파고든다 패잔병처럼 두 팔 들고 맑은 달 속의 흑점을 찾아 유방암 사진을 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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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13 - [책] -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1. 자신이 낮 12시 15분 경 자기 아파트에서 베르너 퇴트게스 기자를 총으로 살해했으며, 뫼딩이 아파트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그를 "데려갈" 수 있을 거라고 했고, 그녀 자신은 12시 15분에서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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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실격
1. 저는 어렸을 때부터 제 가족에 대해서조차도 그들이 얼마나 힘들어하고 또 무엇을 생각하며 살고 있는지 전혀 짐작할 수가 없었고, 그저 두렵고 거북해서 그 어색함을 못 이긴 나머지 일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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